2015년 12월 29일 화요일
밴쿠버 생활
밴쿠버(의 옆도시 Burnaby)에서 산지 어느 새 2년이 넘었다.
한국에선 그사이 헬조선이란 단어가 유행중이다.
2년 남짓 살고 보니 왜 살기 좋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내년에는 이 곳을 떠날 예정이므로 이 곳에 살면서 느낀 점을 잊기 전에 정리하고 싶다.
- 마음안에 여유를 가진 사람들.
한국에 비하면 뭐 어디든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캐나다는 좀 더 그런 것 같다. 문화적인 이유도 있고 실제 환경에서 오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고 여기저기서 익스큐즈미, 쏘리, 땡큐가 터져나오는건 문화적인 것이고, 깨끗한 공기와 밀리지 않는 도로, 어디서나 항상 저 멀리 보이는 록키산맥 같은 건 환경적인 이유일 것이다. 물론 여기도 잡 찾느라, 생활비 충당하느라 고민하는 사람들 많지만.
한인 교민들은 더 착하다. 한인들끼리 돕고 사는 문화가 많이 있다. 한국에서 많이 들은 말로는 외국가면 한국인 조심하라고 하지만, 밴쿠버/나의 경우 나쁜 한국사람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모르는 한인들은 예의바르고 친절하며, 아는 한인들은 한없이 착하고 재미있고 무슨 일이든 도와주려 한다.
- 바다, 산 그리고 맑은 공기
하와이나 캘리포니아 같은 멋진 해변이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커다란 산맥과 바다를 함께 보는건 정말 장관이다. 공기도 굉장히 깨끗하고 높은 건물도 잘 없어서, 어느 방향을 보든 새파란 하늘 아래 지평선이나 수평선이 보인다. 공기가 깨끗하다는 것에서 오는 시각적인 느낌은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눈에 있던 더러운 렌즈를 여기서 뺀 느낌이라고 하면 비슷할까?
- 트래픽잼이란 없다.
이 것도 한국이 특히 나쁜 것인데, 이 곳은 출퇴근시간에도 길이 안막힌다. 구글맵에 밀린답시고 새빨갛게 표시된 구간도 대낮의 서울보다 안밀린다. 단 한번 H-1 고속도로가 몹시 막히는 걸 봤는데 큰 사고로 인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의 보복운전이나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각종 사고들도 원인 1순위는 밀리는 도로인 것 같다. 밀리는 도로로 인해 극단적으로 효율을 중시하게 되고, 이 효율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운전 못하는 사람이라며 욕하고, 도로위에 오래있기 싫으니 끼어들기를 하고, 끼어들기 당한 사람은 열받아서 보복운전하고. 쩝. 여기 기준으론 위험하게만 안하면 운전 잘하는 거다. (물론 여기도 존재하는 일부 성질급한 운전자들 빼고)
- 괜찮은 연금
알바를 하던지 공사장 인부를 하던지 최저임금이 높기 때문에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또한 모든 소득은 연금 기금을 내고, 일정 금액 이상 기금을 내면 노후에 연금이 나온다. 월 2천불 정도라고 하는데, 그럼 노부부의 경우 월 4천불이 나오는 셈. 은퇴할 나이까지 버티면 이만큼 돈이 나온다는건 굉장한 심리적 안정감을 줄 것 같다. 이 곳에서 보편적인 라이프는, 돈벌며 취미활동 하고, 모기지론 받아서 집을 산 뒤 은퇴할 때까지 빚을 갚는다. 은퇴후 집을 줄여 차액으로 투자하거나 렌트를 줘서 은퇴 후 자금에 보태고, 여기에 연금도 받는 것인 것 같다.
- 높은 집값?
차이나머니의 유입으로 인한 이 곳의 가파른 집값상승은 한국뉴스에도 나온 적이 있다. 내가 렌트비를 내며 살고 있는 곳은 다운타운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인 2층짜리 단독주택인데 이 정도면 아마 10억가까이 할 것이다. 근데 콘도(한국의 아파트와 비슷)의 경우 훨씬 가격이 내려가고, 내 나이 정도의 사람들이 많이 사는 타운하우스의 경우 5~6억 정도 한다. 여기서 본 타운하우스들은 1층에 가라지가 있고 방도 3~4개 되고 테라스까지 있어 내 경우 오히려 하우스보다 더 마음에 드는 형태이다. 서울의 아파트 값으로 도심에 더 가까운 곳에 트래픽 걱정, 층간소음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니..
뉴스에 나온 '밴쿠버의 집값 상승'은 주로 '밴쿠버 시'에 대한 내용으로, 도심에서 1~20분 거리도 안되는 좁은 의미의 Vancouver City로, 지름이 20km도 안된다. 이렇게 좁은 영역으로 따지면 정말 집값이 비싸다.
- 그로셔리는 싸고 외식은 비싸다
음식을 해먹는 경우 신선한 재료를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나는 사실 잘 모르지만 와이프와 이야기해보면 한국에서 장보던 대로 봤는데 가격이 약 60%정도라고 했다. 그것도 캐나다 달러 떨어지기 전 이야기다. 품목품목이 다 다르므로 나같은 개인이 자세히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체감물가가 그 정도라는 것. 여기는 물건 구매시 부가가치세를 사는 사람이 내기 때문에(게다가 14%..) 모든 물건 가격에 14%를 더해야한다.(식품의 경우 5%) 그래도 대체로 싸다는 것.
그런데 외식의 경우는 반대가 된다. 맥도날드를 먹어도 1인당 8~9불은 들고 좀 괜찮은 식당은 2~30불. 거기에 팁까지 줘야하니 외식은 진짜 특별한 날 하는 것이다 ㅠㅠ. 우리 부부같은 경우 은재를 낳은 뒤로는 테이크아웃을 꽤 자주 한다. 밥하기 귀찮거나 특별한 한국음식이 먹고 싶은 경우, 아기를 데리고 가기는 빡세기 때문에 테이크아웃해서 집에서 먹는다. 비싸긴 해도 이런 경우 팁은 안줘도 됨 :)
- 취미활동
야근이란 없기 때문에 저녁마다 다들 하는 각종 취미활동이 있다. 우리가 섬머타임이라고 알고 있는 daylight saving제도가 여름에 있는데, (시계가 한시간 당겨진다) 안그래도 해가 긴 여름에 한시간 더 일찍 출퇴근을 하면 해가 밤9시 넘어서도 떠있다. 배낚시, 게낚시, 하이킹, 자전거, 보드게임, 캠핑 등 우리회사 팀원들만 해도 많은 취미거리를 가지고 있다. 취미활동에 필요한 물품들 역시 싸다;; 교회사람들 따라 캠핑을 몇번 갔는데, 2인용 접이식 텐트 5만원 에어베드 3만원으로 장만했고, 같이 이용한 캠핑장 이용비도 나눠내니 만원정도 했던 것 같다. 캠핑장 환경도 사이트끼리 뚝 떨어져 있어서 완전한 어둠을 즐길 수 있었다.
낚시나 뱃놀이의 경우 싸게 즐기고 싶으면 고무보트나 카약을 사면 되는데 해병대가 쓸 것 같은 고무보트를 산 교회 형의 경우 고무보트 20만원 + 작은 모터 100만원정도 들였다고 한다. 카약도 싼데 너무 싼 것 말고 적당히 사면 30만원정도 들이면 된다.
내 경우 RC장난감에 관심을 갖게 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We2eG4JYXQs 요런거. 투자금은 30만원. 추가로 구입한 racing quadcopter 조립중, 투자금 15만원.
- 의료비 무료
한국이 의료보험이 잘 돼있다고 들었으나 그건 의료복지 후진국 미국에 비교한 것이거나 일반적인 질병에 대한 이야기이고, 한국에서도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리면 치료비이든 입원비이든 결국 천문학적인 돈이 깨지는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암보험에 다들 드는 것이고..
여기는 의료비가 안든다. 아니 평소에 월급에서 차감된다. 다같이 내고 아픈 사람을 돕는다는 취지가 정말 마음에 든다. 오바마케어에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 인간들이 '캐나다에서 진료받으려면 몇달은 기다려야한다'고 하는데,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위염같은, 패밀리닥터가 못봐주는 질병의 경우 전문의를 만나야 하는데 전문의를 만나려면 오래 걸린다, 최악의 경우 몇달. 하지만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의 경우 우선순위 큐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오래걸리진 않는다. (이때문에 치명적이지 않은 질병의 경우 오래기다려야하는지도..)
은재를 출산할 때, 우리는 집 근처 종합병원을 출산지로 신청했고 출산하러 가서 출산 사흘 후까지 1인실에 있었다. 개인 화장실/샤워실이 딸린 가로세로 6미터 정도의 넓은 방이었고 그 곳에서 출산하고 그 곳에 아기와 쭉 함께 있었다. 기저귀와 분유가 무한제공 되었고 물론 맛없는 식사도 제공되었다. 와이프는 미역국 먹고 이건 내가 먹었지만ㅋㅋ. 이 곳에서의 출산 경험이 너무 맘에 들어서 둘째도 이 곳에서 낳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인데 더 생각나면 추가해야겠다.
살기 좋은 도시인걸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밴쿠버. MS에 있든 아니든 내년엔 여길 떠날 것이고, 앞으로도 이 곳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내 딸이 태어난 곳,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난 이 곳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을 최대한 오래 마음속에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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