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향기가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글인데 굳이 이런 연구결과를 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향기가 추억을 자극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첫사랑이 쓰던 향수라던지 어릴적 할머니집에서 나던 뭔지 모를 향이라던지.
지난 봄에 업무차 홍콩에 갈 일이 있었다. 내가 집에 안가면 그녀의 육아 노동은 그만큼 힘들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짧게 갔는데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액티비티 딱 한 가지를 했다. 바로 내가 1991~1992년에 살았던 곳을 찾아 가는 것.
아파트 입구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맹신하는 사람도 있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의심의 끝으로 가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같은 궁극으로 가기도 하는데, 나도 의심하는 편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간 이 곳은 내가 기억하던 구조와 거의 일치했다. 새로 칠하고 출입문에 경비가 있는 등 많이 화려해졌지만 내가 기억하던 공간 그대로를 25년만에 방문하는 이 기분이란!
매일 스쿨버스를 타던 곳
가족과 수영을 즐기던 단지 내 야외 수영장
내가 정말 깜짝 놀란 곳은 단지를 실컷 구경한 후 자주 가던 단지내 상가쪽으로 가는 길에서였다. 단지와 상가가 이어지는 길은 특이하게도 거의 절벽 위의 길인데 이 곳에 와 맡은 향기가 25년전에 이 곳에서 나던 향기와 같다는걸 느꼈고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면서 그 당시의 기억이 머리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마 이 곳의 나무들이 뿜는 향기와 상가의 홍콩 음식점 냄새가 섞인 걸로 추정되는 그 특유의 냄새는 25년전 평소에 다닐때도 내가 친숙하게 느끼는 향이었고, 그걸 지금도 기억한다는 걸 넘어 그 향 자체가 기억력을 엄청 자극해주고 있다는 것을 너무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놀라 특별할 것 없는 장소인데 사진을 찍었다.
기억력에 뽐뿌질을 받고 들뜬 나는 상가 구경을 시작했다. 하지만 상가 내부는 구조가 많이 바뀌어 일부를 제외하곤 알아볼 수 없었다. 장을 보던 마트는 내 기억보다 약간 작았고 스파2를 하던 오락실 자리는 아예 길의 일부가 되었다. (얼마나 작았으면..)
You can't go home again이란 말이 있다. 고향에 가도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에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는 고향과 같은 곳에는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 길 위에서 나는 무슨 나무인지 모를 나무향을 맡으며 잠시 눈을 감음으로 흐릿하게나마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이 향을 저장해 두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는게 너무 안타까웠다.
Thus the saying, "you can't go home again."
난 개인적으로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과거의 자신의 삶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풍경과 향기보다는. 내 경험처럼 그런 풍경과 향기가 기억력을 자극해 향수를 강화할 수 있다면 풍경 자체보다 자신의 기억속 그리운 장소를 끄집어 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언젠가는 로드뷰+VR이 과거를 향수하는 도구가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3D프린터처럼 향기도 기록, 복사해내는 날이 온다면 엄청난 도구가 될 것 같다.